부스러기사랑나눔회 결연후원자 이성호, 김혜숙 님 인터뷰
부스러기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눈물

어느 날 “이제 내가 내년에 은퇴하게 되어 결연후원 졸업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요.”라는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2010년도에 후원을 시작하여 두 명의 아동을 졸업시키고, 또 한 명의 아동 졸업을 앞두고, 이제 본인도 은퇴하시니 아이들과 함께 졸업해야겠다는 말씀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젊은 날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잊지 않고 사랑을 나누어주신 이성호 후원자님의 이야기입니다. 후원자님의 졸업에 앞서 그간 부스러기를 통한 나눔은 어떠셨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라는 이름이 좋아
후원자님은 어떻게 처음 부스러기를 통해 후원하게 되었는지 여쭤보니 “내 아내가 이야기해서 시작하게 됐지요.”라고 공을 아내이신 김혜숙 후원자님께 넘기셨습니다. 아내이신 김혜숙 후원자님은 일찍이 2004년부터 결연후원을 하고 계셨습니다. 김혜숙 후원자님은 신문을 통해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알게 되었는데 단체 이름이 참 좋았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스러기, 가난한 이방 여인의 간절함, 그 부스러기잖아요.”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부스러기로 구원에 이르는 신비가 담겨 마음에 들었다고 하십니다.
첫 아이, 특별한 사랑의 경험
“예진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후원자님의 첫 결연아동이었던 예진이를 후원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당시 예진이가 예고 진학을 앞두고 있어 비싼 등록금과 학업 유지비용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부스러기에서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매월 후원자님의 월급으로 모두 감당하기는 버거운 금액이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후원자님이 해결해보시겠다 하고 친한 동료들에게 “좋은 일을 해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료 두 분과 후원자님이 힘을 모아 예진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원자님께 기쁨이 되었던 이 일이 홀로 예진이를 키우던 엄마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 그리고 올해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감사인사를 전해온다고 하십니다.
또 다른 후원의 시작
두 분 후원자님 모두 이웃을 돕는 일은 자연스럽게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부모님께서 남다른 이웃사랑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김혜숙 후원자님은 “그 시절 모두 가난했었지요”라며 어린 날 선친께서 부유했던 날에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물질을 나누셨고, 선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난에 처했을 그때도 더 가난한 이웃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나도 청소년기를 정말 가난하게 보냈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다”고 하시며 국내아동 뿐 아니라 해외아동까지 결연후원으로 사랑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얼마 전, 이성호 후원자님이 재직 중이신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부스러기 졸업생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대학생활과 학업에 대해 멘토가 되어주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부탁드렸더니 “대견하다!”며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후원을 졸업하시겠다던 후원자님, 선뜻 또 다른 사랑 나눔을 시작해주십니다.
얼마 전, 부스러기 사무실로 홀로 아들을 키우던 부스러기 장학생의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상현이가 대학에 합격했어요!” 상현이를 홀로 키워낸 가난한 어린 아빠, 본인은 가보지 못한 대학에 아이가 입학하게 되었고, 그것도 유수의 대학에 수시로 합격하니 무척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습니다. “아버님, 그간 혼자 아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이내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려왔습니다. 외롭고, 두려운 가난 앞에서 그간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그러나 상현이에게는 2013년도부터 변함없이 후원해주신 후원자님이 계십니다. 아이의 감사편지 속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후원자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하겠다”던 아이!
부스러기 사랑은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합니다.
후원자님의 눈물 어린 기도와 물질의 나눔은
가난보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 결연후원자 이성호, 김혜숙 님 인터뷰
부스러기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눈물
어느 날 “이제 내가 내년에 은퇴하게 되어 결연후원 졸업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요.”라는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2010년도에 후원을 시작하여 두 명의 아동을 졸업시키고, 또 한 명의 아동 졸업을 앞두고, 이제 본인도 은퇴하시니 아이들과 함께 졸업해야겠다는 말씀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젊은 날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잊지 않고 사랑을 나누어주신 이성호 후원자님의 이야기입니다. 후원자님의 졸업에 앞서 그간 부스러기를 통한 나눔은 어떠셨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라는 이름이 좋아
후원자님은 어떻게 처음 부스러기를 통해 후원하게 되었는지 여쭤보니 “내 아내가 이야기해서 시작하게 됐지요.”라고 공을 아내이신 김혜숙 후원자님께 넘기셨습니다. 아내이신 김혜숙 후원자님은 일찍이 2004년부터 결연후원을 하고 계셨습니다. 김혜숙 후원자님은 신문을 통해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알게 되었는데 단체 이름이 참 좋았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스러기, 가난한 이방 여인의 간절함, 그 부스러기잖아요.”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부스러기로 구원에 이르는 신비가 담겨 마음에 들었다고 하십니다.
첫 아이, 특별한 사랑의 경험
“예진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후원자님의 첫 결연아동이었던 예진이를 후원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당시 예진이가 예고 진학을 앞두고 있어 비싼 등록금과 학업 유지비용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부스러기에서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매월 후원자님의 월급으로 모두 감당하기는 버거운 금액이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후원자님이 해결해보시겠다 하고 친한 동료들에게 “좋은 일을 해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료 두 분과 후원자님이 힘을 모아 예진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원자님께 기쁨이 되었던 이 일이 홀로 예진이를 키우던 엄마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 그리고 올해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감사인사를 전해온다고 하십니다.
또 다른 후원의 시작
두 분 후원자님 모두 이웃을 돕는 일은 자연스럽게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부모님께서 남다른 이웃사랑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김혜숙 후원자님은 “그 시절 모두 가난했었지요”라며 어린 날 선친께서 부유했던 날에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물질을 나누셨고, 선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난에 처했을 그때도 더 가난한 이웃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나도 청소년기를 정말 가난하게 보냈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다”고 하시며 국내아동 뿐 아니라 해외아동까지 결연후원으로 사랑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얼마 전, 이성호 후원자님이 재직 중이신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부스러기 졸업생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대학생활과 학업에 대해 멘토가 되어주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부탁드렸더니 “대견하다!”며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후원을 졸업하시겠다던 후원자님, 선뜻 또 다른 사랑 나눔을 시작해주십니다.
얼마 전, 부스러기 사무실로 홀로 아들을 키우던 부스러기 장학생의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상현이가 대학에 합격했어요!” 상현이를 홀로 키워낸 가난한 어린 아빠, 본인은 가보지 못한 대학에 아이가 입학하게 되었고, 그것도 유수의 대학에 수시로 합격하니 무척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습니다. “아버님, 그간 혼자 아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이내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려왔습니다. 외롭고, 두려운 가난 앞에서 그간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그러나 상현이에게는 2013년도부터 변함없이 후원해주신 후원자님이 계십니다. 아이의 감사편지 속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후원자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하겠다”던 아이!
부스러기 사랑은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합니다.
후원자님의 눈물 어린 기도와 물질의 나눔은
가난보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